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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미없지만 유익한 독성학
  • 날짜 : 2009-04-21 (화) 15:34l
  • 조회 : 8,653

2005년 초겨울 황우석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서울대 수의학과 대강당에서는 한국독성학회 교육인증위원회 주관 독성학 전문교육과정이 진행되고 있었다. 안전성연구회 소속 교수님으로부터 이 교육과정에 대한 소개를 전해 듣고 반가운 마음에 진료일정을 며칠 보류하고서 참석하게 되었다.

전체내용은 독성학의 원리, 위해성 평가, 안전성 평가방법론, 독성 동태학, 간독성, 신장독성, 생식독성, 면역독성, 독성유전체 발암성, 내분비독성, 신경독성, 산업독성, 환경독성, 규제독성, 식품독성, 흡입독성, 통합독성, 통계학, 특강-세포치료제의 최근 연구동향, 생물의약품의 안
전성 평가 등이었다. 총 18시간의 강의를 듣는 동안 한약재와 관련된 강의는 단 5분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서울대생활과학대학 교수가 식품독성을 강의하던 중 하루에 감초로 만든 사탕 1kg를 먹은 이란여성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얘기가 전부였다. 한국에서는 하루 기준으로 감초를 6g 이상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도대체 1kg이나 되는 감초 사탕을 하루만에 다 먹었다니 우리 문화권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황당한 사건이었다. 어쨌든 한약재의 독성이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연구도 상대적으로 덜된데다가 한약이 식품의 독성과 유사하여 의약품에 비해 심각한 독성 발현이 드물었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한약독성학에 대한 자료는 단행본으로 나온 책이 절판상태이기 때문에 도서관에 가서 읽거나 생약학책 등을 참고로 하고,

국립독성원의 연구자료를 참고해야 했다. 본초에서 말하는 유독·유소독·무독의 개념은 독성학(Toxicology)의 毒과는 차이가 있다. 독성성분이 검출되지 않더라도 한의학적 개념에 의해 유독하다고 말할수 있으며, 동시에 본초에서는 무독이라고 했으나 실제로 독성성분이 검출되는 한약재가 있을 수 있다. 언젠가는 본초학을 통해 이 상반된 견해의 기본적인 관점 차이와 임상실제에 대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전망한다. 독성학은 생물체에 대한 독성물질의 해로운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해로운 영향(adverse effects)이란 정상상태의 생물체에게 부정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이며, 충분한 시간동안 표적기관에 농축된 활성화합물에 의해 발생한다.

내가 본과생이었을 때 들은 얘기다. 한번은 본초실습시간에 사용하던 파두를 몇 개 하숙집으로 가져갔던 동기가 있었다. 하숙집에 사는 다른 후배에게 파두를 마치 대단한 보약재나 되는 것처럼 허언을 했더니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후배가 파두 몇 개를 차례차례 먹어버렸다. 그리고서는 화장실 문고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응급실에 가서 위세척을 했다고 한다. 주사나 부자, 파두 등 몇 가지 유독 약재는 제한적이기는 하나 여전히 환자의 치료에 사용되고 있으므로 신중한 투여와 독성 발현에 대한 경과관찰이 필요하다. 한때 비소성분의 약재는 중국을 위시한 동양에서는 간질 치료목적으로 사용되었고, 서양에서는 1920년대 성병 치료를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독성물질이 사람에게 미치는 결과는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농축이 다르고, 독성물질의 고유한 성질이나 노출의 빈도와 기간, 노출경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약의 효과가 개인 차이가 있듯이 약의 독성 발현 역시 개인차이가 있다. 특히 남녀, 종족, 연령, 건강상태, 독성물질에 대한 이전 혹은 동시 폭로에 따른 차이가 있다. 예컨대 미국에 사는 백인종 중 3~5%에서는 CYP효소에 대해 생성결함을 가진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황인종은 백인종에 비해 좀 덜하다고 알려져 있다. 간에서 무독화의 대사과정에 관여하는 효소의 선천적인 결핍으로 인해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약재가 이 사람들에게는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요즘의 기술로는 피 한 방울만 가지고도 효소결핍에 관한 유전자의 정보를 알 수 있다고 하니 하루빨리 상용화되기를 기대한다.

양약이든 한약이든 독성용량을 결정할 때는 LD(lethal dose)50이라고 하여 쥐 100마리 중 50마리가 죽는 약물의 농도를 기준으로 한다. LD50(mg/kg)에서 독성용량이 낮을수록 위험한 약이 되는 것이다. 높은 용량에서도 쥐가 죽지 않으면 독성용량을 결정하기 어려운데 한약재 중에는 독성실험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이유로 LD50의 용량이 없는 경우들이 여럿이다.

좋은 약이란 lethal dose (치사 농도)와 effective dose(효과 농도)의 거리가 먼 약물이다. 즉 적은 용량으로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높은 용량으로 치사량이 시작되는 조건에 맞아야 좋은 약이라 할 수 있다. 일부 간질 치료에 사용되는 양약은 효과농도와 치사농도의 거리가 너무 좁
아서 조금 덜 사용하면 효과가 없고 조금 더 사용했다가는 독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론상으로는 좋은 약이라 볼 수 없겠지만 간질로 고통받는 환자나 가족들에게는 좋은 약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안전성의 한계선은 100마리의 쥐 중 1마리에게서 독성이 나타나고 99마리에게서의 효과를 보이는 농도로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치료농도는 50마리에게서 효과가 있고, 50마리에게서 독성(혹은 치사)이 나타나는 용량을 기준으로 한다.

白朮에 대한 일본의 한 연구를 보니 삼환계 우울증 치료약이자 소아야뇨증치료에 사용되는 imipramine에 비해 항우울·항불안 효과가 뛰어난 대신 약물독성은 현저히 낮았다. 이런 약재들은 좋은 약의 후보이며 향후 신약개발의 좋은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독성시험의 범주에는 동물실험(in vivo test: 설치류 및 비설치류)과 세포실험이 있다. 단회투여(급성)로 LD50용 량을 보기도 하고, 4·13·26·52·104주(weeks)의 반복투여실험을 수행하기도 하며 생식독성, 면역독성, 국소독성시험, 국소 내성시험 등의 특수독성실험도 있다. 세포실험(in vitro)은 주로 유전독성시험과 면역독성시험, 세포배양시험에서 활용된다. 연세대에 의뢰하여 생식독성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교애사물탕이나 팔물탕, 안태음 등을 복용시킨 쥐에게서 더 많은 새끼들이 태어났고 건강했다고 한다. 임신 중 한약 복용에 대한 안전성에 대한 검증은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면 좋을 것이다.

한약은 질병의 치료와 건강 유지를 위해 사용되고 있지만 독성학의 관점에서 볼 때는 의약품이라기보다는 식품과 유사하다.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즉 오랜 경험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므로 20세기에 나타난 화학약품에 비해 안전하다고 널리 인식되는 동시에 안전함을 증명하는 자료가 구비되어 있지 않다. 이런 모호함으로는 안전함의 근거를 대기에 역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이런 양면성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자연에서 채취된 건강식품에 대해 안전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가급적 동물실험자료를 갖출 것을 권하고 있다.

식품독성은 대부분 간, 신장, 소화기와 관련한 organ독성이 나타나지만 내분비, 신경계 등 systemic한 독성도 있다. 피부와 호흡기가 가장 관련이 적다고 알려져 있으나 한약이든 양약이든 환자가 호소하는 부작용의 대부분이 소화기와 피부에 대한 부작용이라는 것을 고려하여 천연에서 얻어진 물질이 다양한 화합물을 포함한다는 전제하에서 기전 역시 다양할 것으로 보고 잠재적 위해 요소를 탐구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식품과 한약에는 다량영양소, 미량영양소, 치료성분, 非치료성분, 오염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위해요소는 내재물질이나 부패산물, 가공과 수치과정에서의 생성물질이 요인일 수 있다. 외인성으로서는 바퀴벌레 등의 동물에 의한 오염, 미생물에 의한 오염, 첨가물, 보관환경으로부터의 문제점에서 비롯될 수 있다. 한약재의 경우 오염이나 잔류농약, 보관과 수치과정의 생성물에 대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간혹 TV로 방영하는 한약재 고발 내용 중에는 과장은 물론이고 왜곡되거나 엉터리인 경우까지 있다. 순기능도 있겠으나 방송의 목적을 위해 재단질을 하는 중에 크게 억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또한 학회지에 실리지도 못할 수준의 간독성 관련 논문이 어느 날 정치적 구호가 되어 마치 한약 복용이 간독성을 일으키는 주범처럼 회자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립독성원의 연구자료를 봐도, 또 국내외의 한약관련 연구자료들을 봐도 한약의 독성은 대체적으로 낮다. 다만 환자들의 건강관리와 질병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한약자체의 독성이나 한약-양약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주의관찰이 임상가나 연구자들에게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질 좋은 실험자재를 갖추고, 질 좋은 동물을 사용하여, 수준 높은 연구자가 인류복지 증진을 위해 한약을 연구하고 전문가집단에서 체계적인 활용을 한다면 더 이상 뭘 더 바라랴? 그러나 독성연구는 비용이 많이 든다. 한약의 경우 비록 그것이 증명이 되진 않았다하더라도 인류가 무수한 Try & Error의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전문가집단에서 우선순위를 매겨 하나씩 검증해가는 방식이면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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