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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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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짜 : 2009-04-21 (화) 16:2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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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 입고 효건 두른 세 남자

출근해서 복도를 지나 진료실로 들어가려는데, 복도의자에 상복을 입고 효건을 두른 세 명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들과 눈이 잠시 마주쳤는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 얼굴들이었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면서‘내가 누굴?’‘, 의료사고인가?’속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친분이 있던 두 명의 내과의사가 의료사고에 휘말려 곤혹을 치루고 있었던 터였다. 잠시 후 간호사가 들어와 세 명이 기다린 지 15분쯤 되었고, 무슨 일인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뭘 어쩌랴? 들어오시도록 했다.

세 명의 40~50대 남성들이 들어왔고, 그 중 맏형으로 보이는 이가 말을 꺼냈다. 자신들의 아버지가 며칠전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제야 일이주 전에 진료한 폐암 말기 환자가 기억났다. 그 환자는 큰며느리가 모시고 왔었다. 누우면 기침이 몹시 심해서 이불에 기대어 앉은 채로 지냈는데 집에서 임종하기를 원해서 퇴원을 했다. 그후 일주일 넘게 심한 기침으로 잠을 못자다보니 침이라도 맞혀 볼까하여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업고 왔다.

할아버지를 살펴봤더니 말 한마디 못할 정도로 쇠약했고, 몸은 뼈 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눈만은 번쩍 번쩍 광이 났다. 진맥을 한 후 침은 놓지 않고 膏과 心兪, 肺兪에 9장씩 뜸을 떴다. 이틀 후 다시 내원했고 그 때 역시 뜸을 떴다. 결국 아들들이 찾아온 이유는 뜸을 뜨고서부터 기침
을 덜하고 잠을 주무신데 대해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나는 놀랜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이 일은 수년 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그 후로도 가끔 진료 중이던 환아가 폐렴이나 수술 후 합병증으로, 환아보호자가 암으로 사망하는 일을 겪으면서 죽음이 삶 가까이에서 한 숨 차이로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사는 동안의 바람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내 나이 50이면 교육부 장관이나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어 있을 줄로 생각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면 지금 즈음 언덕 위의 하얀집에 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상상하며 웃게 된다. 세상물정을 몰라서 혹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고 싶어서 그런 바람을 가졌을 것 같다.

한의사가 된 이후에는 손봉호 교수님의 책을 읽던 중에 시범적으로 유언장을 써보게 되었는데, 유언장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가 명확해졌다. 의외라 싶을 정도로 단순해서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었다‘. 서로를 돌보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것이 내가 간절히 바라는 삶이었다. 나중에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눠서 요약해봤다. 한의사로서의 내 역할에 충실하기,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또 善行에 대해서는 여력이 되고 기회가 있는 한 지속하기 등 이 세 가지가 사는 동안 하고 싶거나 누리고 싶은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의 業, 오연 오지 오경 아동에 대한 한의학적 이해와 치료효과에 대해서는 119명의 지능검사 자료를 전후비교해봐서 그 가치를 알고 있다. 한약을 복용하지 않은63명은 전-후 지능검사에서 IQ 상승이 22명(34.9%),IQ 하강이 41명(65%)이었다. 한약을 복용한 아동 56명은 전-후 지능검사에서 IQ 상승이 48명(85.7%), IQ 하강이 8명(12.7%)이었다.

장애아동과 가족은 지능과 언어능력이 향상되면 삶의 질이 나아진다. 나의 가족은 유쾌하고 자유롭다. 덕을 쌓는 일은 아직 미미하여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잘하고 싶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은 남긴다고 하는데, 나는 달리 생각한다. 이름을 남겨서 뭐 하겠는가? 단순한 욕구를 가지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서 실행해가는 일상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자신의 내면을 이해하는 地圖

대학원 시절 정우열 은사님으로부터 三松이라는 호를 받았다. 잘난 척, 아는 척을 하면서 성찰이 부족한 내게 警戒를 삼도록 배려하신 호가 아닌가 싶다. 三은 曾子의 一日三省에서 비롯되었고 松은 돌림자다. 논어의 學而篇에 나와 있는‘曾子曰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에서 특별히 傳不習 乎를 자주 돌아본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욕구와 생각을 잘 들여다보는 사람은 인생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부럽다.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유언장이나 자기사명선언서를 써 보는 게 도움이 된다. 이 방법이 부담스럽다면 일주일간의 짧은 메모로 대신할 수 있다. 즉 이번 주를 대상으로 하루에 두 가지씩 에피소드를 정리해보는 것이다. 하나는 즐거웠던 일, 다른 하나는 즐겁지 않았던 일, 그리고 그 일이 어떤 느낌이었는지와 그 일을 통해 내게 어떤 욕구가 있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욕구의 강도를 1부터 10까지 점수화 하다보면 결국 자신에게 어떤 욕구가 있는지, 무엇이 중요하고 덜 중요한지 이해하는 힌트를 얻게 된다. 우리의 눈은 밖으로 열려 있고 타인을 보기 쉽지만, 인생의 풍요로움과 문제해결능력은 내면을 돌아봄으로써 시작되는 것 같다. 본 란에 기고하고 있는‘진료실 이야기’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초심으로 돌아가듯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가 삶을 돌볼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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