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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MSTA 2019 미얀마 의료봉사
  • 날짜 : 2019-09-27 (금) 09:35l
  • 조회 : 148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줘”
2년 만에 다시 찾은 미얀마에서 해외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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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현 원장 서울 성북구 단아안화사한의원

 

많은 봉사를 다녀봤지만 아무런 소회가 들지 않는 봉사에 관해서는 글을 쓰기가 꺼려진다. 감상에 취한 기록을 숙제처럼 남기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미얀마를 다녀올 때는 나도 모르게 스르르 펜을 들게 됐다. 

하지만 진심으로, 내가 지금부터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연휴를 반납하고 사람을 돕고 왔더니 보람찼다거나 초심을 되찾았다는 등의 발에 채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길 바란다. 이 글은 반성문에 보다 가깝기 때문이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미얀마와 나의 인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 이사를 왔더니 바로 옆 건물이 미얀마대사관이었다.

그 전까지 나는 이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으며, 어떤 음식을 먹는지, 국기는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홀린 사람마냥 컴퓨터를 켜고 참가할 수 있는 의료봉사가 있는지 검색했고, 마침 그 날이 미얀마 해외의료봉사의 접수마감일이었다. 

2017년 여름 미얀마에서의 첫 봉사 이후 같은 계절, 같은 장소에 돌아왔으니 정확히 2년만인 셈이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미얀마는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었다. 신한은행이 생겼고, 백인 관광객이 늘었으며, 소비 수준도 조금 더 높아진 것 같았다.

봉사 첫 날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함부로 이 나라가 ‘변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나에게 합장을 하며 고마워하는 환자가 점점 줄어든 듯한 기분에 못내 서운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내가 오랫동안 이 나라를 오해하며 짝사랑해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한 불교의 나라라는 딱지를 붙이고, 이 곳이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기만을 바랐던 나의 생각은 얼마나 일방향적이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가. 

왜 사람은 항상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는 것일까? 연애도 서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대개 콩깍지가 씌는 법이다. 사랑이 아니라 열병이다.

늦은 오후, 내 진료실에 젊은 미얀마 여자가 허리 통증을 치료받으러 왔다. 당연히 말이 안 통하겠거니 생각하고 루틴 실시 후 말없이 발침하려는데, 악센트도 없는 매우 유창한 영어로 나에게 도리어 묻는다. 

“비영리 단체인가요? 너무 깊은 인상을 받아서 그러는데 페이스북이라도 좀 알려주세요. 저는 전통의학이 좀 더 신뢰가 가거든요.” 

그 순간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우리의 선진 의료기술을 전파하겠다는 생각에는 우리가 그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전제이자 착각이 깔려있음을 깨달았고, 두 번째로는 그들이 보기에도 우리의 치료 프로토콜이 여전히 전통 의학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모든 봉사는 그 자체로도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이기적인 측면이 있다. ‘왜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봉사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우리는 흔히 ‘한의학의 세계화’를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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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를 이해했을 때, 비로소 의료봉사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

하지만 과연 ‘세계화’가 무엇인가? 우리가 직접 세계로 찾아가 고인 우물같은 전통의학이 아님을 알리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세계가 전통의학 그 자체로서 우리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것일까? 

아젠다를 모호하게 설정했다가는 큰 일 날지도 모른다는 각성이 들었다. 더불어 내가 전통의학이라는 타이틀이 싫은 것처럼 그들도 순수의 나라, 도움이 필요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썩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미치자 역설적으로 내가 이 나라를 드디어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 안도감이 들었다.

한편, 그대로 있어주기를 기대하지 않았던 것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었을 때, 우리는 놀랍고도 반가운 감정을 느낌과 동시에 비로소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다시 찾은 양곤 전통의학병원에는 새로운 병원장이 부임해있었고, 의욕넘치는 그녀는 병원 곳곳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다. 

그러다 2년 전, 나와 함께 일했던 미얀마 의사를 우연히 마주쳤다. 우리는 그 당시에 그렇게 친하고 애틋한 사이도 아니었지만은 우습게도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이 먼저 동했고 손을 잡고나서 아무 말 없이 꼬옥 부둥켜 안았다.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여유 넘치는 모습이었다. 의국장으로 승진하기까지는 2년 간 무수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좋은 의미에서 그 기품은 참으로 변함이 없었다. 

문득 나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지 궁금해졌다. 사실 콤스타에서의 첫 봉사 이후 나에게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좀 더 겸허해졌고, 쾌락과 진짜 행복을 구분하게 됐으며, 무엇보다 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개원을 해냈다. 


‘인연의 나라’에서 찾은 삶의 여러 가지 의미들

솔직히 말해 다시 그들 앞에 선 내 자신이, 내 표정이 자랑스러웠다. 확실히 이전보다 웃음이 늘었다. 공부한 것도 늘어 어떤 환자가 와도 겁내지 않고 진료했다. 구안와사 전문 한의원을 하게 된 것이 신의 한 수였는지 안면마비 환자가 유난히 많이 왔고,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진료했다. 

통역 담당인 한나선생님의 말로는 미얀마가 원래 중풍 환자가 그리 많다고 한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심하게 진전을 보이던 중풍 후유증 환자가 치료 직후 눈에 띄게 떨림이 줄어 싱글벙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사무국 대리가 다가와 한 마디 한다. “원장님, 2년 전에 요기 앞에 있던 구멍가게엘 갔는데 거기 아줌마도 똑같고, 애기도 똑같고, 모든 게 다 똑같아요!” 

“뭘 그렇게 놀라!”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대해 생각했다. 

정말로 변하지 않았다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 가게의 아주머니는 어렸던 우리 대리가 그 동안 법대에 입학해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영영 모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평생 알고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죽을 때까지 보고 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인연이 닿는 사람은 파도에 떠밀려 온 편지처럼 어느 날 갑자기 만나기도 한다. 이 나라에 발을 들인 첫 순간부터, 다시 이 곳을 찾기까지의 여정이 빙글빙글 돌아온 하나의 길처럼 느껴졌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얀마에는 ‘인연의 나라’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괜히 불교의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혼자 웃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의원에 출근하니 매일 보던 환자가 넌지시 묻는다. “원장님, 선교 다녀오셨어요?” 그리고 나는 대답한다. “네, 뭐 그 비슷한 거 갔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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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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