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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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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의사 이 맛에 산다
  • 날짜 : 2009-04-21 (화) 16:5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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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수련의로 일을 시작할 쯤, 아는 선배가“인턴생활이 많이 힘들지만 처음 만나는 환자가 기억
에 많이 남을 것”이라고 말해준 기억이 난다. 한의대 시절에도 부모와 친구 및 지인들에게 침을 놓고 약을 써봤지만, 한의사 면허를 받고 의사 가운을 입고 처음 맞이한 환자와는 느낌이 달랐다.

인턴 처음에 4주간 풀킵 당직을 서면서 일을 익혔는데 그 때 배정된 과는 침구 2과(침구과는 3과까지 있었다)였다. 동기들 12명에 당시 병동환자 수가 160명 정도여서 산술적으로 따지면 수련의 한명당 13~14명 정도 환자를 담당하는 식이었다.

그러면서 운명적인 첫 환자를 보게 됐다. 구안와사를 앓고 있는 40대 주부였다. 구안와사에 걸린 여성 환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거울만 보면 한숨짓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고‘낫지 않으면 어쩌나’는 불안감에 불면증으로도 고생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인턴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안심시키는 일 밖에 없었는데 상처받은 환자의 마음을 달래기가 쉽지 않았다. 매일 환자의 손을 꼭 잡고 마치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처럼“이 병이 처음 며칠은 입이 더 돌아간 것처럼 보여도 치료를 받고 좀 지나면 입이 제자리로 찾을 거니까 거울 그만 보고 마음을 편하게 해야 한다”고 반복해 말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말로 지성이면 감천이었던가. 어느 날 또 한 차례의 주기도문이 끝나자 가슴을 두드리며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 이후부터 표정도 밝아지고 불면을 호소하는 횟수도 적어지더니 마침내 일주일 뒤 퇴원을 할 정도로 호전됐다.

퇴원을 하루 앞두고“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마웠다.

함께 식사라도 한번하자”는 환자의 간곡한 청을 뿌리칠 수밖에 없었다. 병원 밖을 나갈 수 없는 인턴의 애틋한(?) 신세 때문이었다.

필자의 마음만큼 환자 또한 애틋했는지 퇴원당일 가슴 뭉클한 눈빛과 함께 3만원을 손에 꼭 쥐어주고 떠났다. 그 돈은 곧바로 치킨 몇 마리로 바뀌었고 동기들과 외출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함께 달랠 수 있었다. 얼마 후 병원 외래에서 우연히 마주친 환자의 얼굴에는 구안와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환한 미소를 보내는 환자의 미소가 일에 지친 인턴의 가슴을 벅찬 감동으로 채워줬다.

‘ 이 맛에 한의사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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