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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역 폭탄 투척’ 강우규 한의사 의거 98주년 기념식 열려 (원문링크)
  • 날짜 : 2017-09-04 (월) 15:4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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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폭탄 투척’ 강우규 한의사 의거 98주년 기념식 열려
김필건 회장, 한의사 강우규 선생 정신 재조명 평전 기증 “한의사 차별 조항 등 일제 잔재 하루빨리 청산되길” [한의신문=윤영혜 기자]일제 신임 총독을 향해 서울역에서 폭탄을 던진 독립운동가이자 한의사였던 왈우 강우규 선생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2일 사단법인 강우규 의사 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서울역 광장 강우규 의사 동상 앞에서 열린 ‘강우규 의사 의거 98주년 기념식’에는 기념사업회 관계자와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 박유철 광복회장,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 시민 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 기념사, 글 낭송, 만세삼창,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장원호 강우규 의사 기념사업회장은 “강 의사가 민족사에 끼친 영향과 업적을 발굴, 계승하도록 지속적인 학술 세미나 등을 통해 미래 세대에 정신적 표석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은 “의연히 담담하게 순국의 길을 간 강 의사의 의거는 가르침이 돼 우리를 광복으로 인도했다”며 “강산이 열 번이나 바뀌었지만 의사의 우국 충정은 여전히 우리 가슴에 남아있다. 숭고한 뜻을 영원히 계승해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은 “일제에 항거해 조국의 광복에 헌신한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한 평전을 만들었고 기증한다”며 “아직까지 의료법에 잔존하는 한의사 차별 조항 등 일제의 잔재들이 하루빨리 청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 회장에 따르면 일제 치하에서 일본은 한의학을 말살하려 했고 당시 의사이던 한의사를 의생, 즉 의료기사의 지위로 격하시켰다는 것. 이후 1945년 광복이 되지만 일본법을 그대로 베낀 의료법이 탄생하면서 한의사 제도가 잠시 없어졌다 6·25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1551년 부산에서 국민의료법을 만들 때 한의사 제도가 겨우 부활할 수 있었다고 시대적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광복 이후 70여년이 지났지만 의사와 한의사간 직능갈등은 여전히 심각하다”며 “1970년도에는 의사들이 한의사들한테 흰 가운조차 못 입게 했고, 80년도에는 한의사들이 혈압도 못 재게 하는 사이 중국은 일본으로부터 어려움을 겪었지만 식민화되는 과정은 겪지 않은 탓에 중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엄청난 국가적 투자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강우규 의사는 지난 1919년 9월 2일 당시 남대문 정거장이었던 서울역 광장에서 제3대 총독으로 부임하던 사이토 마코토 일행을 향해 폭탄을 투척해 일제의 침략성을 폭로하고 대한인의 자주독립의지를 만천하에 알린 독립유공자다. 강우규 의사는 어린 시절부터 한의학을 공부했고 의술이 뛰어나 30대 초반에 이미 거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1885년 함경남도 흥원으로 이주해 상업에 종사하다가 1909년 단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동휘를 만나 55세의 나이에 민족의식에 눈을 떴다. 강 의사는 1919년 3·1 운동 소식을 듣고 신흥동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같은 해 4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 한인 독립운동단체 ‘노인동맹단’에 가입했다. 이후 러시아인에게 구입한 폭탄을 지닌 채 원산을 거쳐 서울로 잠입했으며, 9월 2일 서울역에서 일제 신임 총독인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에게 폭탄을 던졌다. 강 의사의 의거는 1000만명 이상이 관람한 영화 암살에서 의열단이 만들어진 계기로 조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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