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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수 원장… 봉사와 섬김의 외길 42년 인생
  • 날짜 : 2011-02-22 (화) 14:12l
  • 조회 : 13,050
모교에 거액의 장학금·한의학 연구 발전기금 쾌척 
74년 최초 한방무료진료실 개설… 수만여명 주민 진료
의료인 자녀들과 활발한 가족의료 선교활동도 병행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는 매서운 한파의 기승만큼 신묘년 새해 서민들의 겨울나기는 어느 해보다 힘들고 혹독해 보인다. 
특히 기부단체들의 비리 연루 뉴스는 가뜩이나 살얼음판과도 같았던 온정문화마저 꽁꽁 얼려 버렸다. 골이 깊어지는 사회 양극화 현상은 그 어느 때보다 이웃에 대한 관심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나눔이나 기부 실천은 말처럼 녹녹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세밑 한의학 발전기금 기부소식은 한의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한의학과 후배사랑 거액의 ‘장학금’ 전달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김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연수 원장은 평소 한의학과 후학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수차례에 걸쳐 거액의 장학금과 한의학 발전기금 기부는 언제부턴가 그의 생활 일부로 자리잡은 듯했다.  

김 원장의 봉사와 섬김의 삶은 판자촌이 즐비하던 1968년 신림동에서 한의원을 처음 개원했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법대 졸업 후 법조인의 길을 포기하고 한의사가 되어 가난한 이웃주민과 동고동락해 온지 올해로 꼭 42년. 돈이 없어 병원 근처에도 갈 수 없는 가난한 이웃에게는 치료비를 받지 않는 맘 좋은 한의사인 그를 주민들은 ‘신림동 슈바이처 박사’로 애칭한다. 친근하고 자애로운 한의사에 대한 따뜻한 존경을 담고 있다.

그의 따뜻한 인간애는 어린 시절 고학으로 공부한 탓도 있지만 천성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학생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지금까지 고등학생들이나 한의대생들에게 거금의 장학금 지원과 격려는 ‘배움은 외부상황 때문에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는 그의 평소 지론 때문이기도 하다.
한 때 김 원장이 서울시의원 진출을 통해 가난하지만 성실한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한 노력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관악구청 한방무료진료실 개설, 환자 수만명 진료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가 묻자, 김 원장은 “1974년 관악구에 한방무료진료실을 국내 처음으로 개설했던 때”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관악구와 동작구가 분구되기 이전인 1974년. 관악구분회장이었던 김 원장은 공화당 정희섭 위원장에게 요청, 어렵사리 관악구청에 한방무료진료실을 개원하게 된다. 분회원 전원이 참여한 한방무료진료실은 지금까지도 한의계 내에서조차 파격적인 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출발한 한방무료진료실은 홍보 부족 등으로 기대만큼 방문 환자가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던 어느 날 예비역 장성 출신 환자 한 명이 한방무료진료실을 찾아왔다. 좌골신경통으로 여러 해동안 고생했다는 그는 이골이 난 듯 “침으로 병을 낫게 할 수 있겠느냐”며 몇 번의 다짐 끝에 김 원장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진료 3일째 되는 날. 그의 간절함이 큰 탓일까? “아픈 부위가 씻은 듯이 나았다”며 환하게 웃는 그는 “자신을 낫게 한 대가로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제안해 왔다. 

김 원장은 “주민들이 한방무료진료실을 찾지 못하는 것은 홍보 부족 때문인 것 같다”며 혼자 말처럼 말하자, 그는 즉시 KBS방송국으로 전화를 걸어 사장에게 한방무료진료실 형편을 전하고 돌아갔다.

기적과도 같은 일은 이튿날 아침 찾아왔다. KBS 기자가 한방무료진료실을 취재하겠다며 찾아온 것이다. 그날 이후 한방무료진료실은 KBS-TV를 통해 전국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극장에서는 ‘대한뉴스(1220호)’에 수개월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 이후 진료실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수만명의 환자가 몰리게 됐다.

이처럼 한방무료진료실을 통해 국민들이 혜택이 돌아가자 국가는 그에게 1981년 한의계 사상 처음으로 국민훈장 목련장을, 또 1986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으로 공로를 치하했다. 

한방무료진료실의 유명세(?)는 김 원장에게 또 다른 일을 주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왕진가방을 들고 신림동 산동네를 누비며 봉사하는 일이었다. 그의 손길을 거쳐 간 주민들은 하루 평균 10〜20명, 지금까지 수십만명에 이른다. 어쩌면 그의 이웃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들이 ‘신림동 슈바이처 박사’로 애칭한 것은 당연한 듯했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보다 당장 나눌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의 원로장로이기도 한 김 원장에게는 장로회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법인이사·한국기독교 군선교회 법인이사·장로회 신학대학교 장학회 감사인 이명원 장로와의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의료인의 가장 큰 덕목은 봉사와 헌신

의료인의 길을 걷고 있는 자녀들도 김 원장과 함께 봉사와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피부과 전문의인 큰 아들 김용준 박사는 강변역 오라클피부과 원장으로 불우이웃 돕기에 앞장서고 있으며, 치과의료선교회장으로 명절 때면 해외선교에 나서는 사위 손영익 박사는 신림동에서 예인치과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한의사인 막내 김성준 박사는 한국기독한의사회 총무이사로 해외의료봉사에 헌신적이다. 이들 모두에겐 아버지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당장 한의계 현실이 어렵다고 피하거나 돌아가지 말고 섬기고 봉사하는 한의사가 될 때 한의학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김 원장은 “지금까지 한 눈 팔지 않고 의료인의 본분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아올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환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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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원장은...

관악구한의사회장, 대한한의사협회 이사, 기독방송국 재정위원, 극동방송국 운영위원, 서울특별시의회 위원, 경희대 한의과대학 총동창회장, 평통자문위 관악구협의회장, 관악 학부모대학 후원회 이사장,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회장, 관악 재향군인회 자문위원, 서울대 행정대학원(Acad) 총동창회 수석부회장, 중앙대학교 사개대학원 총동창회장.
◆ 상훈
국민훈장 목련장(영세민 무료진료), 국민포장(불우학생 장학금 지급), 국민훈장 동백장(관악평통회장), 국세청장 표창, 대통령·보건복지부장관·서울시장 표창, 대한한의사협회 공로패, 서울시한의사회장 표창, 경희인상, 전국장로회 연합회장 공로패, 경희대 총장 감사패, 중앙대학교 총장 공로패,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회장 공로패.
강환웅 기자   [khw@akom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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