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앞에는 수류탄을 든 채 결의에 찬 모습으로 서 있는 한 노인의 동상이 있습니다.
바로 한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왈우 강우규 선생인데요.
조선 총독을 폭살 시킬 계획으로 남대문역에 폭탄을 투척했지만 총독 피살에는 실패하고 일본 경찰에 체포돼 결국, 1920년 11월 29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게 되었죠.
일제의 말살정책을 이겨내고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 온 한의학의 역사를 다룬 매일경제TV 건강한의사 영상을 보면서,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시죠.
조선시대 우리나라 한의학 연구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세종 때 집현전의 의학전문가들이 만든 동아시아 전통의학 백과전서 의방유취,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에 관한 의약서 향약집성방,
그리고 조선의학의 표준을 세운 동의보감까지
조선의 3대 의서에는 한의학의 정신이 깃들어 있죠.
중국인 능어는 동의보감을 천하의 보물이라고 했고, 일본인 의관 원원통은 천하의 표준이 될 만한 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한의사들을 몰아내기 시작합니다.
바로 의생제도를 도입한 건데요.
의사라는 용어보다 한 단계 아래인 의생, 즉, 의술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용어로 격하시키면서 한의학의 지위도 떨어트렸죠.
수천 년 동안 한국인에게 최적화된 전통 치료법을 계승해오던 한의학을 일본은 야만적인 문화로 매도한 겁니다.
이로 인해 조선 후기까지 활동했던 많은 한의사들은 의생 제도를 거부하고 우리의 민족의학을 지키기 위해 항일운동에 나섰는데요.
그 중심에 바로 한의사 강우규가 있었습니다.
학교를 세우고 신학문 전파와 계몽운동에 앞장 서던 그는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윽고 1919년 9월 2일, 일본 총독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는데요.
그러나 암살에는 실패했고, 서대문형무소의 사형대에 서게 됩니다.
일제 억압으로 고통받은 민족의 아픔을 치유한 한의사이자 애국자인 왈우 강우규 선생
그리고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의지로 지켜 온 한의학
유구한 민족사와 함께 발전해 온 한의학의 가치를 이제 2만 5천의 한의사들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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